2008년 11월 04일
내 몸 읽어 보기-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갸날프지만 아름다운 미의 여신, 비너스를 연상시킵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참 말이 많은 오페라입니다. 비올레타가 미모와 병약함이라는, 전형적인 순정만화 퓔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소프라노 하면 떠오르는 풍만한 몸과 매치되기 힘들죠. 그래서 「라 트라비아타」 주연을 맡고, 사람들에게 좋은 공연이었다고 칭찬받으려면 출중한 노래 실력만 가지고는 택도 없습니다~ 병약한 인물에 맞게 몸도 꽤나 앙상해야 합니다. 좋은 노래를 부르면서 몸도 앙상한 소프라노를 요구하는 이런 태도는 비올레타 캐스팅을 언제나 시각적 폭력이라는 말로 귀결되게 만듭니다.
비올레타 캐스팅 논란이 뭐 오페라 세계만의 일이겠습니까~ 저 역시도 한때 누군가 제 몸을 시각적 폭력이라 여기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이 언니~’에서 멋진 척 글을 쓰고 있는 저도, 한때는 다이어트에 목숨 걸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굶는 건 죽어도 못하는 성격이어서 굶어 본 적은 없지만, 그만큼 먹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었습니다. 식빵에 버터 한 번 발라도 ‘살찔 텐데..’, 치즈가 잔뜩 녹아 있는 피자를 들어 올리면서도 ‘살찔 텐데’, 심한 날은 하루 종일 살찔 텐데만 생각하다가 지나간 적도 있죠.

거울을 보는 여인과 거울 속 여인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타인(남성)의 시선으로 제 모습을 보게 하는 건 아닐까요.
한때 저에게 ‘건강하다’라는 말은 뚱뚱하다의 완곡한 표현처럼 들렸습니다. ‘지금이 딱 좋다’라는 말은 저에게 만족스럽지 않았죠. ‘날씬하다’라는 말도 부족하게 들렸습니다. ‘너 너무 말랐어, 앙상해~’나 되어야 이제 만족하고 살 수 있겠군 싶었죠. 이것뿐인가요? 전 가끔 거울이 이전투구의 장(場)처럼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거울 앞에 서 있는 제 몸은 분명 제 몸이지만, 거울 속엔 저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얼굴은 누구처럼, 배는 누구처럼, 다리는 누구처럼 이러면서 온갖 익명의 누군가가 제 몸 위로 겹쳐지면서 자꾸만 실제의 제 몸을 밀어냈습니다. 그 몸들의 겹침 속에서 만족을 느껴 본 적은 없습니다. 거울 속의 몸은 분명 미디어나 광고가 표준처럼 제시하는 몸과 같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면 좌절감과 결핍감이 밀려오죠. 그 외부의 몸은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몸이라는 걸 알지만, 아무리 주위에서 괜찮다고 하지만, 몸에 관해서는 만족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어쨌든 말입니다. 제 몸에 관해 요렇게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던 저에게 친구가 책 한 권을 주더군요.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라는 다소 신비스러운 제목을 풍기는 여성 건강 해설서(도움서)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책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뭐 몇 권 있다 하더라도 여성을 거의 아기 낳는 도구 정도로 생각해서, 어떻게 하면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건강한 몸을 만들 것인가 같은 말이나 하는 책이 대부분이죠.

여성의 몸에 대한 미의 기준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가부장적 사회가 원하는 대로 규정 지어졌습니다.
요즘엔 여성의 식욕이 유일하게 인정되는 임신 기간마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
저자 크리스티안 노스럽 언니는 가부장적 사회가 원하는 몸 이미지는 고만 버리라고 말합니다(전 사실 뜨끔~ 했슴따). 그리고 제발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약 먹고, 병원 가서 치료하란 이야기도 잘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의사인데도, 의학적 치료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말도 합니다. 모든 것이 성인 남성 기준으로(심지어 알약들까지) 재편되어 있는, 그런 젠더화된 의학 세계에서 여성의 몸을 살펴보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이 언니 차분하게 저도 잘 모르는 여성의 몸에 대해 설명해 주십니다. 많은 여성들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건 자신의 몸에 관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제 몸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체중계에 나타나는 수치나 여성복 사이즈가 유일하게 제 몸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죠. 내 몸이 주는 신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병원에 가면 불규칙한 월경은 몇 달 있다 보면 나아지는 거라고 하고, 월경통에 대해선 아직도 진통제가 유일한 처방이죠. 이유 없이 아플 때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의사의 ‘아무 이상 없음’이라는 말은 늘상 저를 좌절하게 만들었죠.
어쨌거나, 위궤양이 재발하여 힘든 한때를 보내게 된 요즘~ 저는 이 크리스티안 언니를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전엔 그저 신기해서 아하~ 몸이란 요렇게 신기한 거구나 하고 읽었다면, 지금은 언니의 지시대로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자연 치유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자연 치유라고 해서 별 거 없습니다. 그냥 열심히 주말마다 산에 다니고, 평일엔 한강 공원까지 열심히 걷는 거죠. 언니 말대로 가부장제가 원하는 여성의 몸(나른하고, 갸날프고, 연약하고, 한마디로 뭐 하나 움직이기 힘든 몸)하고는 이제 안녕~ 그런 몸에서 벗어나서 다른 몸으로 조금씩 변모하고 있죠. 게다가 전투판이었던 거울은 그저, 어디 아픈 데 없나를 체크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직 바뀌고 있는 이 몸이 어디까지 변화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결과를 맺을지도 사실 예상하기 힘들죠. 열심히 걷고, 운동하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이런 일로 몸이 달라지면, 삶이 변한다는데 한번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 by | 2008/11/04 17:24 | 이언니를만나다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