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내 사표는 의미있다

지난주에 포스팅 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2편입니다.


유치한 권력

앤드리아는 경쟁률 무지하게 치열하다는 패션잡지, 『런웨이』어시스턴트 에디터로 들어갑니다. 냄새 풍기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양파 베이글을 사람들 앞에서 우적우적 씹어 대고, 회사에서 트림하는 것도 잊지 않는 이 무(無) 센스녀를 과연 누가 채용해 주겠습니까~ 44사이즈만 살아남는다는 그곳에서 77사이즈로 들이대는데 과연 누가 뽑아 주겠냐구요. 하지만 바싹 마르고, 패션밖에 모르는 애들보다 좀 똑똑한 애가 있었으면 하는 미란다의 작은 바람 덕택에 앤드리아는 즉석에서 채용됩니다.

어시스턴트 에디터, 미란다 직속 비서라는 이 자리는 뭘 하는 곳일까요? 영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란다는 날마다 자신의 코트와 가방을 앤드리아 자리에 집어 던집니다. 정리하라구요~. 네 정리, 비싼 옷들 구겨질까 봐 열심히 정리합니다. 그것만 시키나요. 폭풍우 치는 날, 쌍둥이 공연 봐야 하니 비행기 띄우라고 전화를 하지 않나. 아직 출간되지 않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구해 오라고 하질 않나~. 영화 속에서 앤드리아는 말이 비서지, 사실은 유모(nanny)와 다름없는 역할을 합니다. 누구의 유모냐구요? 당연히 미란다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중에서.
미란다(매릴 스트립)의 비서 앤드리아(앤 해서웨이)는 '유모' 역할을 합니다.
사실 비서나 유모나 누군가의 '수족' 역할을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말입니다.


본인 역시도 일과 가정 모든 곳에서 가부장적 성 역할을 강요받고 괴로워했으면서, 결국 어시스턴트 에디터인 앤드리아에게도 똑같은 일을 시킵니다. 먹고 싶은 스테이크 사오라고 해놓고는 다른 약속 잡고, 변덕은 어찌나 심한지. 완전히 애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죠. 앤드리아는 그런 미란다의 애 같은 행동을 다 받아 줘야 하죠. 재미나지 않습니까? 악착같이 올라간 자리에서 미란다가 하는 행동이라고는 자기보다 직급 낮은 애들 등골이나 빨고, 제멋대로인 행동들 받아달라고 하는 것밖에 없죠. 미란다는 자신이 직접 그런 일을 겪어 왔으면서도(물론 제 생각에) 전혀 그 고리를 끊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하면 더했지요.

누군가의 말대로, 사람의 본성이란 권력을 잡았을 때 드러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원래 권력이라는 게 저렇게 유치한가 싶기도 하더군요. 고군분투해서 올라간 곳에서 하는 일이 결국은 상황에 제약받지 않고 부하 직원에게 제멋대로인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결국 우리는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행동을 한껏 해보려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길 원하는 것일까요? 더 당당하게 유치해지기 위해서?


나의 성공은 누군가의 추락

열심히 둘이서 아웅다웅, 동거동락하다 보니 미란다도 서서히 앤드리아를 신뢰하는 눈치입니다. 그러면서 원래 예정되어 있던 파리 패션쇼에 앤드리아 선배 에밀리 대신에 앤드리아와 가려고 하죠.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멋진 사람들과 아름다운 옷, 조금씩 쌓여 가는 미란다의 신뢰로 일이 즐거워진 앤드리아, 몇 초 고민하다가 결국 에밀리에게 자신이 가게 되었다고 말하죠. 미안하다고,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요.

앤드리아가 에밀리에게 어쩔 수 없이 파리 패션쇼에 내가 가게 되었다고 말한 것처럼, 앤지도 사람들에게 말하죠. 어쩔 수 없이라구요.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구요. 표면적인 층위에서 이들이 누군가를 밀어 내고 앞으로 나가려고 할 때 하는 핑계들은 똑같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죠.

앵그르 作 <오달리스크와 노예>
누워있는 주인과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여인, 화면 뒤쪽에 선 남자.
주인과의 거리에 따라 역할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과연 그 역할의 가치도 '거리'에 의해 규정될까요?


에밀리라는 퍼스트 어시스턴트를 밀어낸 앤드리아는 더 이상 미란다의 내니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미란다의 내니는 다시 에밀리에게 미뤄지죠. 능력을 인정받은 앤드리아는 더 이상 딸처럼, 엄마처럼 미란다를 보살피지 않아도 됩니다. 보살핌의 가치는 그렇게 하찮은 것인지 바로 중요한 일에서 밀려난 에밀리에게 넘어가거든요.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어쩌겠습니다. 상사에게 인정받는다는 것 행복한 일이지요.

하지만 미란다는 자기 수족처럼 부리던 나이젤이란 남자를 마치 더 키워 줄 것처럼 하더니 자신의 위치가 불안정해지자 가차없이 그의 성공에 초칠을 해버립니다. 그러고는 독립시켜 주기로 한 약속을 깨버리고, 다시 자신의 밑으로 끌어옵니다. 순전히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면서 앤드리아에게 너와 나는 닮았다고 하죠.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나 당당하게 그것을 이룬다구요. 나이젤을 그렇게 처참하게 만들어 버린 미란다에게 나와 당신은 같지 않다고 말했을 때, 미란다가 말하죠.

“너도 에밀리를 그렇게 밀어냈잖아.”



그녀의 사표는 의미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면, 앤드리아는 미란다의 그 냉혹한 이야기 ‘내가 나이젤 밀어냈다고 뭐라 하지마, 너도 에밀리 밀어냈잖아’를 들으며 그 자리에서 내려 사표를 던집니다. 그리곤 미란다의 노예 콜링을 전담했던 휴대폰을 바로 던져 버립니다. 다시는 당신의 지시를 받고 살지 않겠다는 표시인 거죠~. 앤드리아는 뭘 느꼈을까요? 가만히 있으면, 퍼스트 어시스턴트 에디터로 승진하고, 누구보다 미란다는 패션의 여왕 옆에서 온갖 감각을 전수받고, 글도 잘 쓰니 몇 년 더 하다 보면 글이라도 연재하기 될지 모르는 데 말입니다. 좀만 더 버티면 칼 라거펠트 같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앤드리아에게 옷 한 번 입혀 보려고 기를 쓸 텐데~.

미란다 밑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끝까지 갔다면 앤드리아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전제 하에서, 딱 미란다 만큼의 부와 명예 권력을 얻었을 겁니다.
더불어 그의 탐욕과 야비함도 물려받았겠죠. '현실'은 늘 이런식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삶이 무슨 소용입니까? 다시 가서 미란다의 변덕을 받아주는 일은 뭐 더 이상 힘든 것도 아닐 겁니다. 조금만 견디면 되니까요. 하지만 어쩌면 앤드리아는 그곳에서 사람을 마치 코 푸는 화장지 사용하듯 쓰고 버리는 미란다에게 환멸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행동에 전혀 죄책감이나 미안함 따위는 갖지 않고, 이게 현실이니까. 이렇게 해서 다들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거야~ 뭐 이런 멘트로 대충 포장하는..착취와 착취로만 이어지는 연쇄 고리를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이렇게 챙기지만, 곧 나이젤처럼 버려질 수도 있죠. 이런 불안감 때문만이었다면 앤드리아는 오히려 악착같이 거기서 버텨냈을 겁니다. 하지만 그곳은 신체 사이즈에 따라 평가받고, 조금이라도 감각이 무뎌졌다고 하면 바로 버려지는 세계입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사람들을 잘라 내야 하고, 그 자리를 내가 메꿔야 하죠. 직장은 자아 실현의 장소라면서요~.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었던 앤드리아는 차마 그 꼴을 못 봤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앤드리아가 상을 받았던 글은 자신이 살던 노동자들의 생활 환경에 대한 고발 기사였거든요.  

얼마 전 어떤 기사를 읽었습니다. 20대 여자들은 왜 이렇게 직장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빨리 사표를 내냐 뭐 이런 기사였습니다. 그런 진단에 너무나 익숙한 문구들이 함께 배치되어 있더군요. “조직 생활을 안 해봐서, 군대를 안 가 봐서, 어려운 시절을 겪어 보지 않아서.”

Economy21 2007년 기사 발췌(바로가기)
연차별 이직 현황입니다. 직장생활을 30세부터 한다고 쳐도, 마흔 이전에 저마다 이직을 합니다.
이리저리 바꾸는 가운데 가려지지 않는 '현실'은 늘 고개를 비집고 나옵니다.


1%는 수긍했고, 나머지 99%엔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저런 현상은 20대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니까요. 누구나 부러워하는 S사에 다니던 제 친구(남자입니다)도 1년만 다니고 바로 그만뒀으며(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하면서요). 그 회사에 어렵게 들어간 신입 직원의 편지가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었죠. 뭐 워낙 기사에서 20대 여성만 콕 찝어 맞춰서리 사실 억울한 맘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여자가 그만 두는 거 카운트로 세고 있었는지 말입니다.~  

전 그와 동시에 같은 여성이면서도 여자들이 사표 쓰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선배들의 글도 읽었습니다. 또한 그 옆에는 사표 쓰는 여성들이 선배에 대해 항변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선배들에게 말을 해도, 네가 참아라 세상이 다 이렇다, 이런 말만 한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선배들 이야기가 사실 백 번 맞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 선배들의 이야기는 뭘 의미하는 걸까요? 잘 참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미란다처럼 거대한 착취 고리 속에서 상위 고리로 올라가는 것 말고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전 사실 수많은 앤드리아들이 원하는 건 자유로운 세계가 아니라 더 나은 세계이고, 자유로운 세계가 아니라 자유로운 ‘나’일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앤드리아는 지독하게 변하지 않는 이 세계, 내가 좋은 게 아니라 세계만 좋은 세계, 성공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먹이 사슬의 상위 단계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 저에게 앤드리아의 사표는 더 이상 그 착취의 사슬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과 현실이라는 말이 알고 보면 그들의 변하지 않는 보수성을 아름답게 포장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아 버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렇다고 앤드리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표를 날리라는 말을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사회 안에서 ‘현실’이라고 표현되는 그 많은 말들이 가리고 있는 걸 젊은 20대들은 명민하게 알아채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 더 이상, 현실이 이래서, 성공하면 너도 나처럼 뭐 이런 멘트로는 20대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겁니다. 

by 없음 | 2008/10/14 13:52 | 이언니를만나다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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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로오나 at 2008/10/15 07:12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가 소설에 비해 우월성을 가지는 부분을 꼽자면 역시 앤드리아가 '자신의 선택'으로 미란다가 보장해줄 미래를 포기하고 내려온다는 거죠. 추악하고 공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매달려 있기 위해 주저없이 빚까지 져가며 자신의 월급을 모조리 쏟아붙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황금의 세계, 그리고 그곳에서 끝까지 버티면 자신에게 보장되는 꿈으로의 패스를 포기하고 자신의 의지로 내려옴으로써 그녀는 성장했습니다 :D 원작소설에서는 이게 자신의 의지가 발휘되는게 아니고 그냥 흐르는대로 살다가 히스테리가 폭발했습니다~라는 느낌이라^^; 참고로 작가인 로렌 와이스버거는 다음 작품(후속작은 아니고요) '누구나 알 권리가 있다'에서도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거기서도 흐름에 따라가다 보니 히스테리가 폭발해서 인간다움을 되찾는다는 패턴이죠;
Commented by 없음 at 2008/10/16 09:52
누추한 블로그에 방문해서 덧글까지 남겨 주시고 감사합니당~~ 이 글을 여기 말고 회사 블로그에서도 연재 중인데, 로오나님 말씀처럼 소설하고 느낌이 많이 다르단 이야기를 누군가 해주셨더라구요. 그래서 책도 한 번 읽어 볼 생각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Commented by luxery at 2009/11/05 12:33
히스테리가 폭팔하다라는 점 재미있네요. 가끔 내면의 자아를 만나곤 하죠. 그동안 갖고있었던 불만들이 폭팔한다고나 할까요. 남들이 '해야한다' 혹은 '하면좋다' 류의 소의 스펙에만 전념하며 대학생활에 낭패를 봤다고 한는 이들 중의 하나인란 생각에 씁쓸하던 중에 좋은 영화한편 보고갑니다. 참 로오나님 말씀처럼 책을 읽어보는 여유까지 가져본다면 더욱 좋을듯..가는길에 서점에 들러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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